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被杀死的黎明 죽임당한 여명

겅츼 2025. 1. 6. 23:41

 

https://archiveofourown.org/works/59390725

  • 원본 링크입니다. 모든 저작권은 기존 작가에게 있으므로 요청이 들어오면 삭제될 수 있음을 알립니다.
  • 씨피? 논씨피? 해석에 달렸다 봅니다. 입맞춤은 있습니다. 가정폭력과 신체훼손, 살해 요소 주의 바랍니다.
  • 영거량과 상앙/영사와 상앙의 관계성에 대한 해석이 일반적인 견해와 다소 다릅니다.
  • 번역 내지 3차창작에 가깝습니다. 직역<<<<<<<<<<<<<의역
  • 오타 제보 환영
  • 즐감(늘 그렇듯 님들에게 파파고보다는 양질의 번역을 제공한다는것에 의의를 둠)

 

(이거 틀고 읽으면 끝장남: 제목도 봐주세요 https://youtu.be/sUCagte87Jo?si=mnGz-_rWEm5_IAaP )


 

 

영사는 과거를 회상할 때 종종 상앙을 떠올리고는 했다.

 

그것은 상앙이 영사의 어린 시절에서 많은 지분을 차지했기 때문도 아니었고, 그의 삶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다만 이미 흐려지기 시작한 지난 날들을 떠올리노라면, 진귀한 광석처럼 묵묵히 자리 잡은 채 희노애락을 품은 세월의 단편 대부분이 상앙이라는 자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뿐이었다.

그런즉 아직 영사가 진왕이 아닌 영사로 있을 수 있었던 어린 시절에, 그가 느끼는 환희와 비애의 이유는 대부분 상앙에게 있었다. 상앙과는 전혀 관련이 없던 망망한 세월들은 회색빛 눈으로 뒤덮인 무색무취의 황무지마냥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사건의 연원을 따지고자 한다면, 아직 영사가 꼬마애였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사의 성질머리는 독보적으로 엉뚱하고 고집스러웠다. 궁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것이 태자가 어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영사는 아주 어렸을때부터 어머니와 친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어머니라는 존재는 닿을 수 없는 상아 조각이었다.

 

땅거미가 드리울 무렵이면, 그녀는 어김없이 어둑어둑한 대청에 앉아 영사를 기다렸다. 영사가 커튼을 제치고 안으로 들어설 때마다 초저녁의 짙은 금홍색 석양이 그의 얼굴과 머릿결에 쏟아졌다. 그의 눈은 황혼 속에서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 제 자식이 깊게 몸을 숙이고 물러나는 모습까지 응시하는 그녀의 정숙하고 우아한 얼굴에서는 아무런 표정도 읽을 수 없었다.

 

이 광활한 왕궁에서, 아버지를 제외하면 영사에겐 믿을만한 친인척이 없었다. 그는 같은 아버지와 다른 어머니를 가진 형제들을 피해 다니며, 진국의 각지를 지키고 있는 친척들을 자주 만나려 들지도 않았다. 어린시절의 그가 유일하게 동경하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그의 마음 속에서, 영거량은 헌공에게도 지지 않는 우수한 군주였다.

이후 대신들은 어쩌면 어린 영사가 상앙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도, 그 대량조가 제 아버지의 명성을 가렸다고 생각해서일지도 모른다고 미루어 추측했다. 그 시절의 영사는 아직 세상 물정을 몰랐을테니.

 

한 가지 사실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진나라의 태자는 그 빛나는 이름을 혐오했다. 좌서장, 대량조, 위앙, 공손앙, 상앙. 대신들은 저마다 수군거렸다. 백성들은 진나라에 공손앙이 있다는 것만 알지, 영거량은 모른다고.

 

 

 

어느 겨울날 아침, 조정에 모인 대신들이 저마다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리던 무렵, 그들은 태자가 마침내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사가 상앙의 법령을 어겼다는 사실에 그들은 아무런 놀라움도 느끼지 않았을 뿐더러, 하나같이 ‘부러 그렇게 했을 것이다’고 입을 모았다. 태자는 제 아버지의 중신을 미워하고 있었으니까. 대신들은 불가피한 비극의 결말을 지켜보는 관객들처럼 저마다 안쓰러운 눈빛으로 죄를 저지른 영사가 계단을 걸어 올라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영사는 머리를 숙이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이 몹쓸 수는 부추기는 이 없이 그가 스스로 떠올린 것이었다. 그는 부러 법령을 어겨 공손앙에게 하나의 딜레마를 던졌다. 그는 공손앙이 감히 그의 목에 칼을 대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은 진나라의 미래였으니까. 동시에 그는 아버지가 자신을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리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자신은 아버지와 닮았으니까. 이제 영사가 해야 할 일은 상앙이 어떻게 이 난제 속에서 허우적거릴지 손을 놓고 지켜보는 것 뿐이었다.

 

-태자께서는 직접 형장에 걸음하셔서 집형을 지켜보시지요.

 

상앙이 공손하게 영사에게 말했다. 그것이 상앙이 영사에게 직접적으로 건네본 첫 마디였다.

 

상앙은 웃고 있었다. 그는 영원한 승리자였다. 오직 승리자만이 이렇게 여유롭게 깔보고, 이렇게 우아하게 미소지을 수 있으니까. 영사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당했다.

 

순식간에 승부는 정해졌다. 비단 한 합의 승부가 아니었다. 이것은 영원히 이어질 승부의 결과이자 애정의 승패였다. 상앙의 차가운 자태는 소년이었던 태자를 단단히 옭아매기 시작했다.

 

영사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사형수마냥 다른 이의 손에 붙들려 형장에 왔다. 형장에 세워진 것은 그의 두 스승님이었고, 한명은 그의 삼촌인즉 아버지의 형님이었다. 상앙은 그들의 죄목을 친필로 적어 보냈다. 태자를 똑바로 교육하지 못하여 태자가 법을 어기도록 만든 죄. 한 명은 코를 베고 한 명은 얼굴에 글자를 새기라 하였다. 하지만 영사는 더 이상 이 상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상앙을 바라보았다. 참통하고 또 절망적으로 상앙을 바라보았다. 피가 순백의 계단에서 쏟아져 흐르고 있었다. 상앙은 아비규환의 한복판에 선 채 은근히 고개를 돌려 말없이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한 쌍의 눈이 마주친 그날 이후로, 영사는 다시는 좌서장을 혐오하지 않았다. 그는 상앙이라는 존재를 숭배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태자가 결국 상앙의 위신에 신복한 것이라고 말했다. 허나 사건이 일단락 된것과 별개로 태자라는 사람이 타인을 지나치게 숭상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영사는 그것을 전혀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는 사람을 고통에 빠트리는 존재를 숭배하듯이, 언젠가 자기 자신조차 갉아먹을 독충처럼 상앙을 광신했다. 상앙은 그에게 있어 옅고 서늘한 흰 빛을 머금은 첫눈같은 사람이었다.

 

 

 

소년 시기의 숭배는 이렇듯 광적이고도 비이성적이었다. 어쩌면 상앙의 위엄이, 어쩌면 상앙이 고통에 신음하는 죄인들을 등지고 눈밭에 서있던 그 날, 도무지 세간의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던 그 덤덤하고도 강인한 안색이, 또 어쩌면 그가 고개를 돌리며 공포에 질린 태자를 향해 싸늘한 미소를 짓던 그 순간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영사의 열광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는 상앙이 조복으로 갈아입고 궁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기 위해 틈만 나면 여명이 시작될 무렵 침실에서 빠져 나왔다. 그는 몽유를 앓는 사람마냥 청색의 갖옷을 두르고 방을 빠져 나왔다.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상앙은 대신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사람이었고, 어느 때에 입궁해도 제지를 받지 않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일찍이 조회를 하는 날이면 상앙은 언제나 제일 일찍 도착해 있었다. 그는 종종 영사의 아버지와 천막 안으로 들어갔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논의했다. 영사는 언제나 그런 그가 지나쳐 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었다. 진나라의 태자는 이슬에 젖은 자신의 소맷자락을 꽉 붙잡았다. 이 순간이 돌아올 때마다 그는 그 어느때보다도 자신이 이 젊은 권신에게 미쳐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영사는 조회가 시작되는 시간을 어림짐작하며 기둥과 처마의 그늘 사이사이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늘은 아직 밝아지고 있는 참이었고, 우중충한 공기는 함양의 궁전을 뒤덮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물 사이를 오가는 거미가 된듯한 기분을 느꼈다. 느릿한 일분일초가 지나가며 하늘도 한치씩 밝아오고 있었다. 먼 곳에서 닭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팔을 감쌌다. 날이 몹시 추웠다.

 

그는 상앙의 화려하고 커다란 마차가 먼 대로에서 달려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얼어붙은 땅에서 비끄러지는 마차를 보고 불현 듯 피에 젖은 눈으로 뒤덮여 있던 형장을 떠올렸다. 눈을 가늘게 뜨고 마차 안을 들여다 보는 순간, 창문으로 손 하나가 뻗어 나왔다. 검은 소맷자락이 고운 손목을 따라 보기좋게 미끄러진 상앙의 손이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영사는 순간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 사람이 자신을 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영사는 고개를 돌렸다. 뒷걸음질을 치다, 이윽고 달아났다.

 

영사는 그가 상앙을 좇기 위해 들인 여명만큼의 수많은 결과를 상상하고는 했다. 어쩌면 어느날 끝내 누군가 태자가 새벽녘에 사라졌음을 깨닫고 자신을 찾아 나서다가 모든 비밀이 들통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쩌면, 밤을 지키는 보초가 너무 깊이 잠든 바람에, 자신의 아버지를 포함한 그 누구도 끝까지 이 사실을 모를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어떤 상상이어도 영사를 걱정에 빠트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것을 안심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이 모든 것들은 시간을 때우기 위한 시시콜콜한 가정에 불과했다. 앞으로도 남아있는 여명은 고독하고도 길었으니까. 그는 무수한 여명동안 조심스레 상앙이 있는 단꿈을 지켰고, 무수한 겨울을 이런 광적인 숭배 상태에서 보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자면, 그는 상앙과 그다지 접점이 없었다. 상앙이 처음 제 발로 영사를 찾아온 것은 효공이 세상을 떠나고 영사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을 무렵이었다.

 

영사는 드디어 아버지가 앉아있던 그 자리에서 상앙을 내려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그것은 상당히 결정적인 날이었다. 그들의 몸에는 모두 상복이 걸쳐져 있었고, 방 안의 화롯불은 매캐했으며, 방 밖으로는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상앙은 그를 향해 인사를 올렸다. 태도는 제법 겸손했지만 폼은 퍽이나 우아했다. 몸을 일으켜 세운 그는 거진 깔보는 눈빛으로 진나라의 새로운 군주를 쳐다보았다. 마치 그의 앞에서 영사는 아직 철없는 어린애에 불과하다는 듯이.

 

영사는 황망하게 한 때는 제 아버지의 것이었고, 이제는 자신의 것이 된 신하를 바라보았다. 그는 상앙이 결코 자신의 신하가 되려고 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느꼈다. 온 조정의 경대부중 오로지 그만이 영사를 거들떠 보지 않았다. 영사는 소년시절 지새워왔던 여명의 격동을 다시금 느꼈다. 앞 모를 서광의 설렘이 다시금 그의 마음을 뒤덮고 있었다.

 

상앙이 동이 틀 무렵 궁으로 향하는 모습을 본지도 오랜 시간이 지났다. 지나간 세월의 주마등이 이순간 다시금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었다. 그는 떨지 않기 위해 애썼다.

 

- 저는 늙었습니다.

상앙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옅은 연륜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제법 듣기 좋았다.

 

-금방 즉위했을 무렵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선군의 곁을 지키는 동안, 저는 이미 진나라의 정쟁에 지칠대로 지쳤습니다. 그래서 떠나려 합니다. 머지 않아 정식적으로 퇴관을 하기 전에, 얼굴이라도 한번 뵙고자 찾아왔습니다.

 

영사는 그가 하는 말을 제대로 귀담아 듣지 않았다. 다만 머리가 터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귀가 한바탕 웅웅 울렸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어지러움을 이기고 똑바로 서 있기 위해 애썼다.

 

영사가 고개를 들어 상앙의 눈을 바라보았다.

-겨우 그 말을 하려고 왔다고?

 

그가 믿을 수 없다는 투로 되물었다.

-겨우 그 말을?

 

-그렇습니다.

 

-하지만…… 진국이 아직 어지러운데.

영사는 고민 없이 말을 이었다.

 

-조금 더 머무르는게.

 

상앙이 웃기 시작했다. 한 때 자신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던 태자가 이제는 자신을 붙잡는 꼴이니 영사는 그 웃음에 달리 의외를 느끼지 않았다. 또 자신이 을이 되었다는 감상, 그 뿐이었다.

 

-이미 결심한 일입니다. 저는 알려드리러 온 것이지, 논의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상앙이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덧붙였다.

 

불빛이 일렁이는 창가 옆에 자리한 상앙의 기색은 검은 천을 휘감은 한자루의 검과 닮아 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입에는 미소를 띄고 있었지만 눈은 그러지 못했다. 결코 제게 이르지 못하고, 이르러서도 안될 것을 보는 무정한 눈빛. 그 눈빛은 따가운 햇빛처럼, 뼈와 살을 들쑤시는 형장의 칼날처럼 우중충한 공기를 들쑤시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진국의 군주란 말이다! 내가! 내가 진국의 군주라고!

 

영사는 포효에 가깝게 소리치며 상앙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포효는 늘상 밑바닥에서 들끓는 어떤 것이었다. 언제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었으므로, 공기중의 마지막 무언가라도 붙잡기 위해서,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서 밑바닥까지 긁어온 어떤 것.

 

그는 자신이 언제 마지막으로 이렇게 포효하였는지 망각했다. 어쩌면 상앙에 의해 형장에 끌려가 제 스승들의 집형을 목도한 그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휘날리는 눈밭에 서있던 아버지를 찾으며 부르짖었다. 아버지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날부로 그는 상앙에게 죽고 살기 시작했다.

 

영사가 얼굴을 감쌌다. 눈꽃이 손틈 사이로 날아들었다. 상앙의 싸늘한 웃음과 영거량의 뒷태가 그의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는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결국 이 나라의 미래는 자신이었으니.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영거량을 뼈에 사무치게 증오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남자는 지독하리만치 위선적인 인간이었으니까.

他知道秦渠梁是爱他的,毕竟他是秦国的继承人,但正因如此他深深痛恨秦渠梁,不为别的,只为他是个虚伪的人。

 

그렇기 때문에 그는 상앙을 깊이 사랑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경멸을 단 한번도 숨기려 든 적이 없었으므로.

 

영사는 손을 뻗어 상앙의 소매를 움켜쥐었다. 그는 정말로 떨고 있었다. 어깨부터 손 끝까지 온통 떨고 있었다. 얼굴에 열이 화끈 올랐다. 자신은 어떤 수를 써도 결코 아버지처럼 상앙을 손아귀에 넣을 수 없다는 사실에 그는 머리 끝까지 몰려드는 절망을 느꼈다.

 

아버지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효공이 죽었으니, 두 번째 효공은 다시는 나타날 수 없겠지. 상앙과 그렇게 친밀한 사람도 다시는 없을테고 말이야.

 

그는 마침내 상앙이 자신의 신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상앙은 오로지 제 아버지에게만 속했다. 상앙은 효공 시대의 사람이었다. 그는 이미 지나간 시대에만 머무를 수 있었다.

그는 미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래 역시 그에게 속하지 않았다.

 

-이런 일은 내가 결정하는거야. 당신 말고.

 

영사는 평정을 되찾고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단호하게 상앙의 손을 붙잡고 손목을 덮은 소매를 걷어 올렸다. 젊은 국군의 얼굴은 거진 신하의 손등에 붙어 있었다. 소년 시절의 정열은 순식간에 그의 피를 연료삼아 들끓으며 그를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한 때 상앙은 차가운 여명 아래에서 손을 뻗어 단번에 소년 영사를 파괴했지만, 이번에는 그가 끓어오르는 탐욕으로 상앙을 파괴할 차례였다.

 

영사는 목을 치켜들고 상앙의 어깨를 누른 채 제 입술을 상대에게 겹쳤다. 피부가 맞닿기 무섭게 상앙은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틀어 그것을 피했다. 바짝 말라있었던 영사의 입술이 갈라지며 옅은 핏자국을 남겼다. 갈라진 입술을 훑는 혀 끝에서 피맛이 천천히 퍼지고 있었다.

 

-저를 놓아주지 않을 작정이십니까?

상앙이 놀란 기색 없이 물었다.

 

-날 위해 일하기 싫은게 눈에 보여서 말이야. 아버지가 그리운게지?

영사가 쏘아 붙였다. 그는 다시 신경질적으로 들뜨고 있었다. 억센 손아귀가 황망하게 상앙의 팔을 붙들었다.

 

-반항할 셈인가? 상앙? 만약 내가 당신에게 억지로 명령을 내린다면, 반항할 셈인가?

 

-아니오.

 

상앙이 덤덤하게 그를 바라보다 답했다.

 

-신이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영사가 가볍게 되물었다.

 

-그렇다면, 만약에, 내가 당신을 죽여버리고 싶다면?

 

-난 당신을 죽이고 싶어.

 

상앙이 창 밖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누가 알겠습니까?

 

그들은 같이 흩날리는 눈발을 보고 있었다. 불현듯 영사는 자신이 소년시절 법을 어겼던 일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이 일을 알고 나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처럼 영사를 가엾게 여기지도 않았고, 법을 어긴 이유를 추궁하지도 않았다. 형이 집행되는 그 날은 유난히 흐렸고, 눈이 크게 내렸다. 까마득한 눈송이는 서로 부딪히며 사브작거리다 깃털처럼 그들의 옷에 내리앉았다. 영거량은 국군의 화려한 예복을 입은 채, 고요하게, 그리고 싸늘하게 영사를 한 번 쳐다 보았다.

그리고 그는 떠났다.

 

옥조패가 눈밭에서 맑은 소리로 울리고 있었다.

 

영사는 섬뜩함을 느꼈다.

아버지의 눈빛은 무서우리만치 어머니를 닮아 있었다.

 

 

 

여기까지 떠올린 영사는 바로 결심했다. 상앙의 피를 마셔야겠노라고. 그는 너무나 흥분한 탓에 상앙이 무어라 했는지 다시는 떠올리지 못했다. 물론 이 생각은 온전히 그의 머리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신하들의 의논에서, 골목길 아이들의 노랫말에서, 눈발이 흩날리던 그 날의 기억에서—— 그는 문득 아버지가 그와 상앙 사이에 남겨둔 음모를, 싸늘한 눈빛 아래에 숨겨진 깊은 뜻을 드문드문 느끼기 시작했다. 그를 지극히 사랑하고, 위선적이고, 심려깊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남긴 마지막 물건은—— 한 병의 붉은 독약이었다.

 

영거량이 이토록 정성스레 대립의 국면을 가꾼 것은, 자신의 아들이 그에게 속하지 않는 모든 것을 손수 파괴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영사의 소년 시절은 끝났다. 그는 아버지의 유산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상앙을 내칠 것이었다. 시들어진 꽃을 꺾어 짓밟듯이, 자신에게 속하지 못 할 모든 것에 대하여.

 

영사는 날아갈듯한 걸음으로 궁을 나서 눈밭으로 걸어 들어갔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 속에서도 정원의 작약은 선연한 봉우리를 머금고 있었다. 여명의 빛을 받은 꽃봉우리들은 죄악을 품은 과실처럼 탐스러웠다. 그는 한 때는 이 꽃들 역시 아버지의 것이었음을 떠올렸다. 그들은 뿌리가 같은 죄악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한 마음으로 여명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새를 주살하고 있었다.

 

나라 곳곳에서 상앙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소문이 들려왔다. 영사는 햇빛이 가득 쏟아지는 길을 걷고 있었다. 이상한 민요들이 귓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모든 가사가 하나의 답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국군은 없다! 상앙 뿐이다! 국군은 없다! 상앙 뿐이다!

没有国君!只有商鞅!没有国君!只有商鞅!

 

겨울은 머지 않아 지나갈 것이었다. 진나라의 군대는 이미 여정을 떠났다. 얼어붙은 산천을 가로지르고 나면, 머지 않아 대승을 거둔 장수가 돌아올 것이었다. 역적 상앙이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는 증거를 두 손 가득 지닌 채.

 

영사의 미소가 한 층 밝아졌다.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아직 충분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머리를 한껏 치켜든 채, 눈부신 겨울의 창공을 응시하며— 자신의 노쇠한 어머니가 새빨간 겉옷을 걸친 채 궁문 앞에 서 있는걸 보기 전까지.

 

많은 세월이 지나갔다. 영사는 태자에서 국군이 되었고, 그녀는 여전히 초연하게 제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누가 되었든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이. 그녀는 눈처럼 하얀 대청에 서있었다. 흰 눈이 분분히 회색빛의 머리에 내리 앉았다.

 

 

 

-네 아버지는 일부러 상앙을 네게 남기셨단다.

你父亲把商鞅留给你。

 

그녀가 말했다.

 

-그이는 네가 손수 이 골칫덩어리를 없애길 원했지. 그래야 네가 비로소 국군다워질테니까. 아버지께서는 널 믿었단다.

他要你亲自除掉这个隐患,这样你才配当国君,他相信你。

 

-예, 알고 있었습니다.

我已经知道了。

 

영사는 미소를 머금은 채 회답했고, 그녀를 지나쳐 걸어갔다.

秦驷微笑地回答,从她身边走了过去。

 

 

 

이날 이후, 영사는 진정한 진나라의 군왕이 되었다. 상앙은 이미 지나간 선군의 시대에 가라앉았고, 영사는 그 시대와의 작별 인사를 했다. 그는 미래의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부드럽고, 찬란하고, 오롯이 자신과 자신의 사람들에게 속하는 내일이 되리라 믿으며.

这天以后,秦驷真正成为了秦国的君王。商鞅沉没在了已经结束的先君的时代,而秦驷挥手和那个时代告别。他凝望着未来的路,坚信它是温柔的、光芒灿烂的、只属于他和他的大臣的时代。

 

이 아름다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피의 제사가 필요한 법이다. 그 제물이 되어준 상앙은 꼭 섬세한 도기처럼 눈밭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영사는 길을 무성하게 뒤덮은 가시 돋힌 꽃을 잘라냈다. 그리고 온통 깨져버린 그의 가슴에 흩뿌렸다.

为了迎来这个美好的时代,就要进行血的祭祀,作为祭品的商鞅在雪地里像一个精致的器皿那样被碾碎了,秦驷剪下生长到路径中间的茂密的带刺的花朵,抛洒在他支离破碎的胸口。

 

그는 이제 더이상 누구도 숭배하지 않았다.

他从此不崇拜任何人。